4월의 마지막 주말(4.25)에 창덕궁 낙선재를 다녀왔다.
창덕궁은 경복궁, 덕수궁과 달리 관람 하는 방법이 제한되어 있다.
우선 일반관람이 있는데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일반관람 코스를 관람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 자유관람이 있는데 안내원 없이 자유롭게 궁내를 관람하는 것인데 목요일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별관람이 있는데 낙선재와 옥류천 일원을 각각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는데
이곳은 연중개방하지 않고 일정기간에 한해 하루 2회, 20명의 제한된 인원만이
인터넷 예약(현장에서도 5명과 예약 취소분)을 통해 관람하는 방법이 있다.
전날 인터넷 예약을 위해 창덕궁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미 한정된 예약인원이 다 채워져 마감된 상태였다.
그래서 다음날 조금 일찍 가서 현장 판매분(5명)을 구입하기로 하고 무작정 창덕궁으로 갔다.
혹시 관람권을 구입하지 못하면 경복궁을 다녀 오기로 했는데 다행이 현장에서 관람권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 예약자들이 취소를 했는지 전날까지 15명이 예약되어 있었는데
특별관람에 참석한 팀은 우리부부와 다른 일행을 포함해서 5명이었다.
우리일행은 5명이 오붓하게 문화재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었지만
무작정 예약만 해놓고 관람하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 정작 관람하고 싶어도 표를 구입하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예약문화가 좀 더 성숙했으면 하는 씁쓸한 생각을 했다.
한시적 이겠지만 우리가 다녀 온 다음 주, 그러니까 5월 부터는 낙선재 후원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낙선재 후원의 모습
낙선재 관람 전에 들렀다 가는 곳이 바로 이곳 보춘정(報春亭)란 현판이 걸린 이곳이 성정각이다.
성정각은 세자를 교육시키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내의원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떨어진 꽃잎 위에 서서 ....
옛 왕조의 슬픈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커다란 벚꽃나무 가지는 휘휘 늘어져 깊은 봄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홍매화가 한창인 낙선재 가는 길에서
낙선재(樂善齋)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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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樂善齋)와 그 옆으로 석복헌(錫福軒), 수강재(壽康齋)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이곳을 일컬어 낙선재라 한다.
이곳 낙선재는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슬픈 역사가 서린 곳으로 사전에 역사적 배경을 알고 관람을 하면 좋다.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에 지어진 창덕궁 내에 있는 건물로 본래 이름은 낙선당이었다고 한다
고종황제도 이곳에서 지낸 바 있으며, 1917년 창덕궁에 큰 불이 났을 때
순종황제도 내전 대신 이곳 낙선재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곳이 세워지게 된 배경은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이 김재청의 딸을 경빈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13년)에 낙선재를 짓고 이듬해에 석복헌을 지어 수강재와 나란히 두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 김시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가 거처하는 곳 이었다.
후궁을 위해 궁궐안에 건물을 새로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문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면모가 느껴지는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을 지녔으며
창살과 벽체의 무늬, 평원루의 건축양식 등에서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을 엿볼 수 있다.
또 이곳은 조선의 황족들이 마지막 생을 보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가 석복헌에서 1966년까지 여기서 기거하다 생을 마쳤으며,
그리고 수강재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1989년 4월 21일 생을 마감할때 까지 기거했던 곳이다
또 낙선재는 1963년 일본에서 귀국한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여사가 기거했던 곳으로
이방자 여사는 덕혜옹주가 떠난 구일 뒤인 1989년 4월 30일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1989년 4월은 조선왕조에게는 잔인한 4월이었다.
이런 슬픈 사연을 간직한 낙선재의 봄은 왠지 쓸쓸함을 더해 준다.
아름다운 조각과 화려한 단청이 칠해 져 있는 궁궐의 다른 건축물과 달리 석복헌은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 석복헌은 헌종이 사랑하는 경빈 김씨를 위해 마련한 처소로
왼쪽에는 남편인 헌종이 오른쪽에는 시할어머니인 순원왕후를 사이에 두고 있다.
석복헌 마루 난간에 새겨진 이 조각은 조롱박으로 다산을 상징한다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 창경궁이 라고 한다
작은 구석 하나 하나 의미가 깃들어 있다.
수강재와 석복헌 사이의 문옆 기둥에 있는 문양으로 왼쪽은 고사리이고 오른쪽은 홍매화다
문 뒤쪽에는 포도문양이 있는데 궁궐의 여인들 공간에는 포자식물과 덩쿨식물들의 문양이 많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자손을 번식하는 다산과 다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담과 굴뚝 모양, 그리고 이곳에 새겨진 문양조차도 하나 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낙선재 후원의 봄은 화려함이 절재된 소박라고 아름다운 봄을 맞고 있었다
낙선재 뒷 마당의 모습
낙선재 후원인 상량정의 만월문이다.
이곳을 드나들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만월문 뒤로 보이는 건물이 낙선재 후원에 있는 육각형의 정자인 상량정(上凉亭)이다.
상량정의 본래 이름은 평원루(平遠樓))였는데 일제때 바뀌었다고 한다.
평원루는 '먼나라와 사이좋게 지낸다는'는 뜻으로 서양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헌종이
서양과 가까이 지내겠다는 의미로 지어졌는데 일본이 이를 못 마땅이 여겨 상량정으로 바꿨다고 한다.
또 후원은 이곳뿐 아니라 석복헌 후원에는 한정당,
수강재 후원에는 취운정이 있어 최고로 안락하고 여유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만월문 벽에 그려진 아름다운 문양들
오른쪽 문이 낙선재에서 후원인 상량정으로 들어오는 문이고
왼쪽이 상량정에서 석복헌 후원인 한정당으로 넘어 가는 문이다.
취운정 에서 바라 본 낙선재와 석복헌, 상량정, 한정당의 모습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지어진 건축물의 전형을 보여주는 낙선재는
후원에서 조망하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낙선재와 석복헌은 궁궐의 전각임에도 단청을 하지 않았지만 대왕대비인 할머니 순원왕후가 머무는
수강재는 단청을 입혀 예우를 높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희미하게 단청의 흔적만 남아 있다.
수강재의 내부 모습
이곳은 관람객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
우리 일행이 후원을 관람하는 동안 누군가가 출입문을 밖에서 잠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신발을 벗어 들고 수강재의 마루를 통해 나오면서 내부 모습을 촬영했다.
창덕궁 낙선재의 봄
낙선재를 둘러싸고 있는 담과 후원인 상량정의 모습이다
창덕궁의 정문 격인 돈화문에서 입장시간을 기다리며...
2010. 4. 25. 창덕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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